[사설] '깜깜이 관리비'의 본질은 아파트가 아니다
대통령이 지난 2월 24일 국무회의에서 직접 꺼내 든 ‘관리비 비리’ 문제는 우리나라 집합건물 관리시장의 고질적인 사각지대를 정조준한 것이었다. 대통령이 언급한 ‘집합건물’과 ‘상가’는 단순한 예시가 아니다. 이는 현행 제도의 경계 밖에서 ‘사적 자치’라는 이름 아래 사실상 방치돼 온 구조적 부조리를 향한 정면 문제 제기였다.
임대료 인상분을 관리비에 슬그머니 전가하거나 실제 수도 요금은 100만원인데 점포들에는 200만원을 부과해 차액을 챙기는 행태, 그리고 이에 대해 “원래 다 그렇게 해왔다”는 식으로 체념하며 묵인해 온 관행은 일부의 일탈 수준을 넘어선다. 대통령의 핵심 문제의식은 이러한 관행이 사실상 구조화된 준사기적 행태에 가깝다는 데 있다.
그러나 3개월 뒤 국토교통부가 내놓은 ‘개선 방안’은 관료사회의 문제를 고스란히 드러냈다. 국토부 대책은 대통령이 지적한 사각지대를 정면으로 다루기보다 이미 공동주택관리법에 따라 촘촘한 규제를 받고 있는 ‘의무관리 아파트’의 규제를 한층 강화하는 방향으로 귀결됐다. 국토부 스스로 현행 제도가 상당 부분 정비돼 있음을 인정하면서도 결국 자신들이 가장 다루기 쉬운 ‘아파트 프레임’으로 논의를 변질해 버린 셈이다.
문제를 이처럼 축소·왜곡한 이유는 분명하다. 첫째 행정편의주의 때문이다. 아파트는 법 체계와 통계가 비교적 명확하고 기존 제도를 손보는 방식으로 손쉽게 정책을 발표할 수 있다. 둘째 부처 권한의 한계에 갇혀 있기 때문이다. 국토부는 공동주택관리법 체계 안에서는 강력한 권한을 행사할 수 있지만 정작 문제가 더 심각한 집합건물법 영역은 법무부·민법·사적 계약 관계 등이 얽혀 있어 개입하기를 주저한다. 결국 “우리가 손댈 수 있는 분야만 손보겠다”는 식의 소극적 행정이 대통령의 근본적 문제 제기를 평범한 관리행정 보완 수준으로 희석시킨 것이다.
실제로 ‘깜깜이 관리비’로 입주자의 삶의 질을 위협하는 곳은 상가, 오피스텔, 지식산업센터 등 집합건물 영역이다. 이들 건물은 관리규약이 허술하고 정보공개 의무도 미비해 공용전기료 부풀리기, 경비·청소비 허위 계상 등 문제의 소지가 크다. 그러나 입주자들은 관련 정보에 접근할 권리조차 제대로 보장받지 못한다. 국토부는 사적 자치 원칙상 개입에 한계가 있다고 하지만, 문제는 그 사적 자치가 오히려 비리를 은폐하고 정당화하는 수단으로 악용되고 있다는 것이다.
대통령의 문제의식을 제대로 정책으로 구현하려면 아파트가 아닌 집합건물 관리시장의 구조적 불투명성의 해소가 중심이 되어야 한다. 집합건물 관리비의 온라인 공개를 의무화하고 표준 관리비 양식을 도입하며 임차인의 열람권을 대폭 강화해야 한다. 나아가 관리업체 등록제 등을 통해 ‘사적 자치’라는 방패 뒤에 숨어 있는 비리 구조를 시장에서 퇴출할 수 있어야 한다.
대통령의 날카로운 문제의식이 관료사회의 행정 편의주의에 갇혀 결국 ‘아파트 제도 보완’이라는 익숙한 대책으로 수렴되고 있는 현실은 우려스럽다. 부처 간 칸막이를 넘어서는 과감한 협력과 집합건물 관리 제도 전반에 대한 근본적 재설계가 시급하다.